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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성

제갈공명 TS

프레네 2018. 8. 16. 01:38

 "누님, 큰 새를 좁디좁은 새장에 가둬 놓았으니 큰 새가 좁은 새장에서 오죽 배기겠습니까? 누님이 바로 그 새입니다. 이 산중을 다 덮을 만큼 큰 새란 말입니다. 누님은 더 큰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균은 잠잠하던 누이의 눈이 작게 일렁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균은 누이의 눈에서 일말의 희망과 쓰디쓴 절망을 읽고 말았다. 자신과는 또 다르게 입신양명을 하고 싶어하는 누이, 그러나 여인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이를 포기해야 했던 누이를 바라보며 균은 그만 마음이 착잡해졌다. 공명. 크게 빛난다는 뜻으로 누이가 그녀 스스로를 위해 지었던 자였다. 사내만이 가질 수 있었던 자를 누이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리고 원직이나 사원이 이를 인정해 주어 누이를 공명이라 불러 주었을 때 누이는 얼마나 뛸 듯이 기뻐했던가!


 균아. 또다시 나직하게 누이는 균의 이름을 불렀다. 귓가를 울리는 누이의 목소리에 균의 회상은 갑작스레 깨어지고 말았다. 누이가 방 안에서 자신더러 무어라 말을 덧붙이는 듯도 하였지만 균은 그 목소리를 뒤로 하였다. 이윽고 균은 문을 세게 닫고는 밖으로 나왔다. 균은 어둑한 바깥에 자리를 잡고 몸을 그러모았다.


 조용한 산야에 문짝이 부딛는 소리는 제법 크게 울려퍼졌다. 이쯤 되면 화를 낼 법도 하건만 누이는 굳이 균을 따라나와 굳게 닫힌 방문을 열지는 않았다. 균은 낡은 문짝에 기대어 답답한 마음을 추슬렀다. 균이 그러는 와중에도 누이의 말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누이는 균이 자신의 말을 단순히 무시하지는 못함을 알고 계속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균은 누이의 말을 듣고 싶기도 했고, 또 듣고 싶지 않기도 했으나 그는 눈을 꼭 감았다. 후끈한 뺨에는 누이의 목소리와 함께 서늘한 바람이 와 닿았다. 바깥은 바람이 꽤 찼기에 균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균아, 너는 쓸 데 없는 소리를 말거라. 그것이 불가한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처음으로 유 예주가 그녀를 찾아왔을 때, 그리고 그 사실을 누이에게 알려 주었을 때 누이는 자신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이 때도 누이는 자신을 절망과 기대가 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더랬다. 아마 지금의 누이도 이와 비슷한 말을 자신에게 하고 있을 것이리라. 균은 문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켜 다시 한 번 몸을 잘게 떨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공명은 고뿔이 단단히 걸린 균을 안채에 두어야만 했다. 균이 밤새도록 얇은 옷으로 냉랭한 바람을 견뎠던 탓이다. 끙끙대며 앓아누운 균을 보며 공명은 답답한 감정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게 무어라고 쓸 데 없는 고집을 그렇게나 부린담. 공명은 한편으로 균의 저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균이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 모습도 어릴 적의 저를 꼭 닮았기 때문이었다.


 공명은 어린 시절을 생각하다 가물해진 숙부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공명이 기억하는 숙부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하게 잘린 그의 목이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고자 수많은 주검을 헤치고 찾아낸 숙부의 시신은 파르스름하게 질려 혀를 빼어문 모습이었다. 공명은 초점이 없던 숙부의 멀건 눈을 잊지 못한다. 그렇기에 공명에게 말을 건네는 숙부의 모습은 시선이 온전치 못했다.


 "네 손에 쥔 것이 많구나." 


 숙부인 제갈현은 어린 공명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놓아야 할 때는 놓을 줄도 알아야 되느니."


 그 때의 공명은 숙부와 장기를 두고 있었다. 어린 공명이 숙부를 이기는 일은 없었지만, 공명은 숙부와 장기를 두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아마 언젠가는 숙부를 꼭 이기리라 생각했던 것도 같다. 요행스럽게도 그 날은 장기가 잘 풀려 공명은 꽤나 많은 말을 따게 되었다. 공명은 제가 힘들게 따낸 말을 제 손에 단단히 쥐었다. 몇 번의 계속된 패배 끝에 겨우 얻게 된 소중한 말이었다.


"손에 들어온 것을 제가 왜 놓아야만 합니까? 제가 그만큼 큰 인물이 되어 모든 것을 다 품으면 그만인 것을요."


 누가 빼앗아 가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장기알을 손바닥에 소중하게 쥐고 있는 자그마한 조카딸이 귀여웠던 나머지 숙부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것이 진정 미련한 것이다."


 "미련하여도 저는 욕심이 많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날, 어린 공명의 손 안에는 공명이 스스로 얻어낸 장기알이 가득했으나 장기판 위에는 공명이 손에 쥐지 못한 말들이 더 많았다. 공명도 숙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공명은 새파랗게 어린 치기로 고집을 부렸다. 공명은 많은 말들을 힘겹게 손에 쥐고는 입을 비쭉였다. 당돌하다며 경을 쳐도 한참을 경을 칠 일이었지만 숙부는 그런 공명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했다.


"네 영특하구나."


 그리고 머리 위를 맴도는 숙부의 부드러운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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