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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성

234년의 제갈첨과 강유

프레네 2018. 8. 16. 00:54

  첨은 온통 기대 속에 둘러싸여 자랐다. 선주를 따라 촉의 재건을 훌륭하게 이루어내었던 그의 아버지처럼, 사람들은 첨 또한 그렇게 해낼 것이라 믿었다. 나고 자란 것부터 저와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강유는 첨에게 제 처지를 종종 비추어 보고는 하였다. 귀함 속에서 자라나는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무어가 그리 동정이 필요한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강유는 아이의 어깨 위의 옭아매어진 아비의 그림자, 그 무거운 그림자가 그렇게 딱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이 그러셨어요."


 첨의 목소리에 강유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아이의 입은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은 듯 작게 오물거리고 있었다. 강유는 첨의 눈높이에 맞추어 차가운 돌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얼 말입니까?"


 "많이 보면 지혜로워질 수 있고, 많이 들으면 신중해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상서를 쉽게 풀어서 말씀해 주신 것이로군요. 하늘은 백성의 눈을 통해 보고 백성의 귀를 통해 듣는다고 하지요."


 첨이 영민하게 눈을 빛내며 빠르게 강유의 말을 받았다.


 "그렇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무릇 드러나지 않은 형체를 보고 미세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구요."


 "잘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정서장군."


 "예. 말씀하세요."


 "저도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으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첨은 말 끝을 작게 흐렸다. 분명 아버지처럼, 이라는 말을 하려다 입 안에서 얼버무렸을 것이다. 첨이 항상 듣는 말이 그러할 터였으므로. 요령좋게 말을 얼버무렸다 한들, 첨은 고작 7살이었다. 강유는 이를 쉽게 알아채었으나 짐짓 모르는 체를 하였다.


 "물론입니다. 지금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렇게나 생각이 깊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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