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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성

강유 독백 단상

프레네 2018. 8. 16. 00:48

 모든 것은 실패했습니다. 종회에게 수하들을 죽이라 조언하였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부족한 이가 부족한 이를 움직이려 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겠지요. 나는 그 때부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하늘마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돕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일은 언제나 그렇게 풀리지 않았던가요. 그러니 지금도 으레 그럴 터입니다. 허나 모든 것이 다 비틀어진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상하게도 원통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내가 종회였더라면 아무렇지 않게 제장들의 목을 칠 수 있었을 테지요. 나와는 달리 종회의 칼 끝에는 항상 주저함과 저어함이 있었습니다. 나는 예리한 칼날에 걸쳐진 진득한 망설임을 수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손속을 직접 베는 것에 거리낌을 느끼는 그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종회가 망설여 일을 그르치는 모양이 퍽 답답하여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디 보통 사람이라면 그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여기서 굳이 잘못된 것을 찾자면 종회가 아니라 그에게 태연히 이런 것을 권간했던 내가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아, 나는 뒤늦게 이를 깨닫고 말았습니다.


 기실, 언제부터 내가 죽음에 무덤덤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젊은 날에는 여러 가지의 죽음을 마주하며 슬퍼하던 내가 있었습니다. "누가 과연 나를 죽이겠는가!" 하고 외치던 위문장의 목이 나의 앞에서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도 내 마음 한 켠에는 그에 대한 애도와 슬픔이 있었습니다. 대장군, 어찌 그리 행동하셨습니까? 왜 구태여 불명예를 남기고 가셨더이까. 나는 온통 처참한 문장의 주검 앞에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문장이 반기를 들던 모습은 쉽게 그려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였으나 나는 그만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눈물을 흘렸던 것은, 무후의 승하로 인하여 임계까지 북받친 슬픔이 다른 형태로 새어나왔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분명히 죽은 이를 위하여 슬퍼할 줄도 알았던 것입니다.


 내 그러하였을진대, 언제부터 그 슬픔과 동정이 모조리 말라붙었는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30년의 세월 안에서 나는 그 이유를 헤아릴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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