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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답중(沓中)으로 떠나 보리심기나 구해 볼까 합니다."


 "그것이 장군의 대답입니까?"


 "언제나 그러했지 않습니까."


 보리를 심는다는 강유의 갑작스러운 말에도 제갈첨은 뜻밖에 잠잠했다. 녹상서사께서는 더 이상의 말은 않으시는구나. 그는 제갈첨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젊지 않은 장수의 눈가에는 회한의 빛이 잠깐 동안 어리고 있었다.


 나뭇가지나 잎이 나무뿌리에 의지하는 것처럼 황호는 황제에게 기대고 있음이라. 강유는 다시금 그것을 곱씹어 보았다. 필사적으로 사언하며 물러난 자신의 모습도 떠올려 보았다. 제갈첨은 분명 자신을 답답해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강유는 속으로만 첨의 질문에 답했다.


 '내 알지요. 당신께서 나를 성도(成都)로 불렀던 이유를 알고 있지요. 내가 왜 그것을 몰랐겠습니까?'


 강유가 입을 열지 않고 답한 내용이 첨에게 닿을 리는 없었으나, 첨이 자신의 대답을 들어 보았자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임을 강유는 알았다. 강유는 여러 번의 좌절을 통하여 무력함을 뼈저리게 배웠다.


 "보한장군(輔漢將軍). 장군은 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까."


 장성한 제갈첨을 대신하여, 기억 속의 어린 첨이 강유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 때에도 강유는 지금과 똑같은 선택을 했다. 젊은 날의 자신은 북벌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득한 시간을 넘어, 두 개의 어린 눈망울이 강유를 똑똑히 쏘아보았다. 첨의 눈빛이 아릿하게 시렸던 탓에 강유는 눈을 감고 말았다.


 경요(景耀) 4년, 제갈첨은 강유에게 익주자사(益州刺史)를 맡기며 그에게서 병권을 거두고자 했다. 첫째로 강유가 거부했고, 둘째로 황제가 그것을 거부하여 제갈첨의 주장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랬음에도 제갈첨은 강유를 끊임없이 중앙으로 불러들이고자 했다.


 중앙이나 북쪽이나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강유는 거의 남지 않은 자취를 더듬어 가며 외곽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항상 저를 마음에 들어하는 자들은 잘 없었다. 게다가 기댈 이는 이미 죽고 없었다. 그를 촉한으로 불러들인 것은 무후(武侯)였고, 기반이 없던 그를 최후까지 지탱해 주었던 것도 무후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유가 기댈 수 있는 이는 오로지 그였다.


 아, 승상. 어찌 어린 아들을 두시고, 그리고 저를 두고 꼭 그렇게 가셔야만 했나이까. 첨과 더불어 강유는 이제 더는 없는 이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 감정은 원망(怨望)이던가, 혹은 원망(願望)이던가. 강유는 가슴이 먹먹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원망(願望) : 원하고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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